Bill Evans – The Two Lonely People



빌 에반스의 The Two Lonely People를 들으면 열기구가 떠오른다. Bmi7 – C#7alt -F#mi7 – A13 진행으로 격정적으로 상승했다가 천천히 하강하는 중인 열기구다. 땅으로 추락할 것 같다가도 다시금 기류를 만나 붕 떠올라서 땅으로 내려앉지 못하는 그런 처절한 모습.


  • 1972년 앨범에 수록된 오리지널
  • 1972년 함부르크 라이브

  • 토니 베넷이 가사를 입혀 부른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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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y를 듣다가



나에게 당신의 현재는 장노출한 사진같은 모습이다.

당신의 움직인 잔상들이 겹쳐보이는, 하지만 늘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형체. 가장 또렷이 빛나는 부분엔 당신의 그림같은 성품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나를 만나기 전 당신의 아이 시절 모습까지도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감히 당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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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오펜하이머>를 드디어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전기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를 보고 왔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 개발을 이끈 장본인이지만 전후에는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을 반대했다고 알려져 있다.

왜 오펜하이머는 입장을 바꾸게 되었을까? 원자폭탄의 대량 살상력과 비윤리성에 대해 개발 단계에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실제 사용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후회했을까? 1936년 32세의 나이로 UC 버클리에서 첫 교수직을 맡은 뒤 6년 후 1942년 맨하탄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된 오펜하이머의 나이는 38세였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세계 최정상급의 연구자이자 유명인이 된 오펜하이머는, 권위와 권력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후에 정치적 흐름과 반대되는 길로 나아갔는가?

놀란은 <오펜하이머>를 통해 이런 질문에 대해 대답한다. 대답보다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놀란의 개인적 평가와 존경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한다. <오펜하이머>는 더 나아가 양자역학이 태동하던 시기의 물리학계 전반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신에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순수한 밀담과, 그것을 바라보는 스트라우스의 의심스럽고 옹졸한 눈빛으로 놀란은 자신의 평가를 내비친다.


인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프로메테우스적인 발견을 세계에 가져왔음에도 조금도 세계를 바꿀 수 없는 아이러니. 영화는 이 점을 봐 달라고, 오펜하이머를 다시 평가해달라고 호소한다. 세계의 미래라는 거대한 과제를 짊어진 오펜하이머는 ‘악’이라기보다 ‘무력’ 그 자체에 가까웠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발명품이 세계에 가져다 준 여파를 회상하며 괴로워하는 오펜하이머 대신 그를 둘러싼 세계가 흔들리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놀란 감독은 이번에도 특이한 플롯을 선보인다. 1) 실제 일어난 사건 2) 오펜하이머와 주변 인물을 대상으로 한 취조 장면 3) 흑백으로 표현되는 루이스 스트라우스의 관점을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각각은 오펜하이머의 객관적인 삶의 궤적, 주변인에 의한 오펜하이머의 평가, 반대 진영의 비판을 대변한다. 일반적인 전기 영화라면 실제 사건을 위주로 시간 순으로 진행하는 것이 제일 안전하겠지만, <오펜하이머>에서는 1, 2, 3을 속도감 있게 뒤섞는다. 실제 러닝 타임이나 비중으로 보더라도 어느 한 편이 우세하지 않다. 관람 전에는 트리니티 실험에서 클라이막스에 도달해 빠르게 하강하는 구조를 예상했었는데, 실제 관람할 때는 트리니티 실험이 딱 절반 지점인 느낌이었다. 그만큼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가를 ‘원폭의 아버지’라는 소개로 일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감독의 신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는 인물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담겼다. 객관적인 서술이 과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법인가? 놀란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세계의 거대한 흐름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뒤흔든 양자역학의 등장, 심화되기 시작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을 하이젠베르크, 그로브 장군, 텔러, 공산주의자였던 전 연인 진 등 인물 간의 역학을 통해 표현했다. 3시간 넘는 러닝타임과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많은 대사량에도 역동성을 잃지 않는 영화였다. 장황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지루하다는 말은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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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되고 거짓말처럼 바뀐 것들




선택의 연속이었던 20대 때처럼 내 선택을 합리화할 필요가 없어졌다. 누군가를 (또는 실은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도 없어졌다.

합리화나 설득의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건, 현명해지거나 단단해져서라기보다 내 힘으로 뭐든지 달성할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신의 성공과 안온한 삶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 잘 쓰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도.

삶은 가능성과 한계 사이의 끊임없는 줄타기이고, 내 목표는 둘 중 어느 쪽도 옳고 틀리지 않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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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로 채운 작은 여유들





지난 3년은 인생의 어떤 순간보다도 정신없었지만 동시에 ‘작은’ 여유가 어느 때보다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기보다 그 시간을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썼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아이가 잠들고 내게 주어진 몇 시간, 일을 마치고 유치원 픽업을 가기 전까지의 몇 분을 알차게 쓰지 않으면 나를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절실함이었다.

어찌됐든 그 시간을 모으고 모아 정말 많은 책과 영화를 봤다. 아마 이 시기를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고 키운 것과는 별개로 내 자신에게는 책, 영화, 그리고 생존을 위해 늘어버린 요리실력이 남을 것 같다.

문득 책과 영화는 인생의 한 시기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한다. ‘임신 기간’ ‘육아 기간’이라는 뻔하고 배타적인 시기 구분이 아닌, 유연한 시각으로 인생의 시기를 정의할 수 있게 해 준다. 취향과 일상을 흔들어 놓는 책과 영화들은 흘러가는 인생에 균열을 만든다. 균열과 균열 사이는 시기가 된다.

그러면 지난 3년은 폴 토머스 앤더슨과 양가위의 영화, 마커스 주삭과 존 업다이크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 있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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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도둑, 나쁜 사람



할 줄 아는 욕이 없는 두 돌 반의 아기는

심한 장난을 치는 아빠에게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목소리로 호통을 치곤 한다.

“아빠는 도둑이야! 정말 나쁜 사람이야!!!! 늑대야! 늑대가 나타났다!”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순수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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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 부족



덤벙대는 성격 탓에 몸에 상처가 한없이 늘어난다. 물건도 어찌나 잘 잃어버리는지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지가 의문이다.

잡생각이 많아서 하려던 일을 까먹거나 놓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주의력 부족 증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인 ADHD 증상이 그렇게 흔하다는데, 집중력 부족과 주의력 부족 중에 주의력 문제가 아닐까. 어떤 의학 강의에서 주의력은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냥 그런 기질을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벌려 놓은 일을 잘 끝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물건을 잘 쏟는 것도
뚜껑을 열어놓고 안 닫는 것도
틀린 길로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도
시각, 후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보다 넘치게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함께 아침을 먹고 남편이 내가 닫은 우유병 뚜껑을 잡고 들어올리려다 말고, 먼저 손으로 돌려본다. 여지없이 뚜껑이 반쯤 열려있다.



“자기가 닫은 뚜껑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돼!”

농담 반 진담 반인 걸 잘 안다.

낼 수 있는 가장 불쌍한 목소리로 말해본다. “내가 주의력 부족인걸 어떻게 해?”

“무슨 주의력 부족이야. 절대 아니야.”

“진짜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거 질환이야!”

그가 깔깔 웃는다.

이래서 우리가 싸우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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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요 며칠은 열쇠 구멍으로 여름을 훔쳐본 것 같은 날이었다.

공기는 뜨겁지만 아직 습기가 공기를 덮치지 않은 무더운 날. 겨울이 1년의 반인 보스턴에는 봄 한 가운데 그런 날이 찾아오곤 한다.


여름은 이상한 계절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계절이다.

지리하고 단조로운 겨울 끝에 색다른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춥다는 이유로, 나가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겁내던 일들이 집 문턱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 때문일까.

더위 때문에 나른하고 기운이 없는 몸과 바짝 깨어난 정신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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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ille Aimée, Duke Jordan, John Pizzarelli, Oscar Peterson, Player

1. Cyrille Aimée & Diego Figueiredo – Just the Two of Us

수많은 Just the two of us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버전이다. 보스턴 City Winery에서 Cyrille Aimée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이 가수가 누군지 모르는, 노래와 함께 와인을 즐기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파격적인 레이저컷 머리에 짧은 원피스를 입고 온 몸으로 리듬을 느끼는 모습에 또 한 번 반했다. 여기 당신을 15년 넘게 좋아한 사람이 있다고 외치면서 힘껏 기립박수를 쳤다.


2. Duke Jordan – How Deep is the Ocean

트리오 토이킷을 연상하게 만드는 경쾌한 우울함. 1973년에 발매된 Duke Jordan의 앨범 “Flight to Denmark”에 수록되어 있다. 지금은 재즈 스탠다드가 된 곡 Jordu의 작곡가인 Duke Jordan은 몇 차례의 유럽 방문을 마치고 1975년에 덴마크로 이주해 사망할 때까지 덴마크에 거주했다. 그에게 각별한 장소였나 보다. 뉴욕을 떠나 새로운 터전을 꿈꾸는 사람의 설렘과 회한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고 들으니 꽤나 그럴듯하다. 앨범에 참여한 Mads Vinding도 덴마크 베이시스트다. 전혀 다른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수록곡 Glad I Met Pat, Take 3도 좋아한다. 1960년에 발매한 “Flight to Jordan”, 1976년의 “Flight to Japan” “Flight to Norway”와의 연속성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3. John Pizzarelli – Agua de Beber

John Pizzarelli의 Agua de Beber를 좋아하는 이유는 피처링으로 참여한 Daniel Jobim의 보컬때문이다. 능숙한 보컬리스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덜 다듬어진 목소리의 어눌한 떨림이 곡의 감정을 극대화한다.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나에게는 그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들린다.

4. Oscar Peterson Trio – All the Things You are

오랜 재즈 스탠다드로서 수많은 버전으로 연주되고 재해석됐던 곡이다. Oscar Peterson의 연주는 가볍고 섬세하다. 분명 묵직하게 타건하고 있는데도 전혀 힘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건반이 힘없이 쓸리는 느낌이다. 어떤 연주자들의 All the things you are은 한없이 사랑스럽게 들린다. Chet Baker, Charlie Parker 버전이 그렇다. Oscar Peterson의 연주는 훨씬 격정적이다. 하지만 몸을 긴장하게 만드는 위협적인 연주 대신 체념한 듯한, 사랑이 주는 모든 감정에 통달한 듯한 무심함으로 감정의 파도를 표현한다.

5. Player – Baby Come Back

1977년에 발매된 Player의 동명의 데뷔 앨범 Player에 수록된 곡이다. 올드락의 펑키하고 이완된 매력을 잘 담고 있다. 같은 앨범의 Melanie, Every Which Way도 가끔은 찾아듣는다. 발매 50년이 지난 시점의 청취자에게도 좋게 들리는 곡들은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너무 올드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당대의 음악적 흐름에 어줍잖게 벗어나서도 안 되고, 음악적 조화로움과 히트곡의 법칙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그런 곡들. 그런 곡들과 많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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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당신의 세계는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했다.

처음엔 그것을 수학 문제처럼 풀어보려고 애썼다.

나중엔 알 수 없는 숫자들과 기호들로 가득한 그 세계의 아름다움을 동경했다.

지금 그 세계에 그 복잡했던 기호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내 눈이 먼 것인지도, 혹은 보려는 의지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세계와 그 세계가 복잡하게 뒤엉켜 더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신이 더이상 그 세계를 보일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금 깨닫는다.

당신의 세계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좋았던 것이라고. 좋아하기 때문에 그 세계가 그토록 어려워 보였던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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