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ily를 듣다가



나에게 당신의 현재는 장노출한 사진같은 모습이다.

당신의 움직인 잔상들이 겹쳐보이는, 하지만 늘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형체. 가장 또렷이 빛나는 부분엔 당신의 그림같은 성품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나를 만나기 전 당신의 아이 시절 모습까지도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감히 당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Continue Reading

30대가 되고 거짓말처럼 바뀐 것들




선택의 연속이었던 20대 때처럼 내 선택을 합리화할 필요가 없어졌다. 누군가를 (또는 실은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도 없어졌다.

합리화나 설득의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건, 현명해지거나 단단해져서라기보다 내 힘으로 뭐든지 달성할 수 있다는 순수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일신의 성공과 안온한 삶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 쯤은 잘 알고 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글 잘 쓰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도.

삶은 가능성과 한계 사이의 끊임없는 줄타기이고, 내 목표는 둘 중 어느 쪽도 옳고 틀리지 않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Continue Reading

책과 영화로 채운 작은 여유들





지난 3년은 인생의 어떤 순간보다도 정신없었지만 동시에 ‘작은’ 여유가 어느 때보다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기보다 그 시간을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썼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아이가 잠들고 내게 주어진 몇 시간, 일을 마치고 유치원 픽업을 가기 전까지의 몇 분을 알차게 쓰지 않으면 나를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절실함이었다.

어찌됐든 그 시간을 모으고 모아 정말 많은 책과 영화를 봤다. 아마 이 시기를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고 키운 것과는 별개로 내 자신에게는 책, 영화, 그리고 생존을 위해 늘어버린 요리실력이 남을 것 같다.

문득 책과 영화는 인생의 한 시기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한다. ‘임신 기간’ ‘육아 기간’이라는 뻔하고 배타적인 시기 구분이 아닌, 유연한 시각으로 인생의 시기를 정의할 수 있게 해 준다. 취향과 일상을 흔들어 놓는 책과 영화들은 흘러가는 인생에 균열을 만든다. 균열과 균열 사이는 시기가 된다.

그러면 지난 3년은 폴 토머스 앤더슨과 양가위의 영화, 마커스 주삭과 존 업다이크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 있었던 시기였다.




Continue Reading

늑대, 도둑, 나쁜 사람



할 줄 아는 욕이 없는 두 돌 반의 아기는

심한 장난을 치는 아빠에게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목소리로 호통을 치곤 한다.

“아빠는 도둑이야! 정말 나쁜 사람이야!!!! 늑대야! 늑대가 나타났다!”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순수의 시절




Continue Reading

주의력 부족



덤벙대는 성격 탓에 몸에 상처가 한없이 늘어난다. 물건도 어찌나 잘 잃어버리는지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지가 의문이다.

잡생각이 많아서 하려던 일을 까먹거나 놓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주의력 부족 증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인 ADHD 증상이 그렇게 흔하다는데, 집중력 부족과 주의력 부족 중에 주의력 문제가 아닐까. 어떤 의학 강의에서 주의력은 유전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냥 그런 기질을 타고난 것 같기도 하다.

벌려 놓은 일을 잘 끝내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물건을 잘 쏟는 것도
뚜껑을 열어놓고 안 닫는 것도
틀린 길로 하염없이 걸어가는 것도
시각, 후각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보다 넘치게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함께 아침을 먹고 남편이 내가 닫은 우유병 뚜껑을 잡고 들어올리려다 말고, 먼저 손으로 돌려본다. 여지없이 뚜껑이 반쯤 열려있다.



“자기가 닫은 뚜껑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돼!”

농담 반 진담 반인 걸 잘 안다.

낼 수 있는 가장 불쌍한 목소리로 말해본다. “내가 주의력 부족인걸 어떻게 해?”

“무슨 주의력 부족이야. 절대 아니야.”

“진짜 맞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거 질환이야!”

그가 깔깔 웃는다.

이래서 우리가 싸우지를 못한다.


Continue Reading

여름


요 며칠은 열쇠 구멍으로 여름을 훔쳐본 것 같은 날이었다.

공기는 뜨겁지만 아직 습기가 공기를 덮치지 않은 무더운 날. 겨울이 1년의 반인 보스턴에는 봄 한 가운데 그런 날이 찾아오곤 한다.


여름은 이상한 계절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계절이다.

지리하고 단조로운 겨울 끝에 색다른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춥다는 이유로, 나가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겁내던 일들이 집 문턱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 때문일까.

더위 때문에 나른하고 기운이 없는 몸과 바짝 깨어난 정신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Continue Reading

세계



당신의 세계는 불가해한 것들로 가득했다.

처음엔 그것을 수학 문제처럼 풀어보려고 애썼다.

나중엔 알 수 없는 숫자들과 기호들로 가득한 그 세계의 아름다움을 동경했다.

지금 그 세계에 그 복잡했던 기호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내 눈이 먼 것인지도, 혹은 보려는 의지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세계와 그 세계가 복잡하게 뒤엉켜 더이상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신이 더이상 그 세계를 보일 필요가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금 깨닫는다.

당신의 세계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당신 자체가 좋았던 것이라고. 좋아하기 때문에 그 세계가 그토록 어려워 보였던 것이라고.



Continue Reading

F1 시즌 개막을 기다리는 마음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에서 반 강제로 같이 하는 취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찾은 게 F1이다.

그래봤자 나는 시즌 동안 꼬박꼬박 경기를 챙겨보는 게 다이지만 남편은 코멘터리에, 팀 라디오에, 이적 관련 정보까지 늘 업데이트되어 있다. 덕분에 내가 따로 뉴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금주에 알아야할 경기 정보 탑5’나 ‘금주의 이변’ 등등을 브리핑해줘서 좋다. 심지어 날씨 상황까지.

나는 메르세데스의 팬은 아니지만 루이스 해밀턴을 응원한다. 해밀턴이 은퇴하면 너무 슬퍼서 F1을 보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초 흑인 드라이버로서 실력만으로 F1에 눈부신 족적을 남겼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세터인데다, 비건 식단으로 몸을 유지하고 환경, 여성, 흑인, 소수자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그를 보며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경심을 느낀다. 남편은 F1을 재미없게 만든 주범이라며 메르세데스-해밀턴 조합을 미워하지만 나는 원래 재미없게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걸…

또 한명의 좋아하는 독일 드라이버 세바스티안 베텔이 작년에 은퇴하면서 올 시즌을 기다리는 마음이 헛헛하지만, 또 새로운 얼굴들이 F1에 어떤 격변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Continue Reading



말을 통해 무언가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건

헛된 바람이다.

해결이 아닌 잠시동안의 해소 — 그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Continue Reading

대학


오랜만에 대학교에 들렀다. 졸업한 후에 가끔씩 드나들었지만 매번 다른 감정으로 오게 되는 이곳이다.

이곳엔 행복과 슬픔이 공존한다.

배움의 희열과 좋은 친구, 선생님, 뜨거운 사랑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졸업하기 전 내 모습이 떳떳하지 못해서 학교에 오면 슬프다.

학교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오만과 길을 잃은 조급함때문에 쫓기듯 졸업했던 대학교 4학년. 그 때 나는 고작 스물둘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파스쿠치로 올라간다. 박사과정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10년의 간극을 무슨 말로 메울까 싶어 주문한 커피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돌아선다.

아주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아닐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익숙한 창문과 익숙한 옥상과 익숙한 계단과 익숙한 의자가 보인다. 잠시 앉아본다.

이렇게나 자연스럽지 못하다. 후련하게 학교에 들러 싱그러운 시절만을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