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먹여 키운다는 것



육아휴직을 한 2021년은 꿈같은 시간이었다. 학창시절 이후 처음으로 일과 배움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 1년은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1년 동안 모유 수유를 하면서 아이를 먹여 키우는 일의 숭고함을 배웠고, 토실토실 살쪄가는 아이를 보면서 내 자신이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 없었다.

가족들도, 아이를 대신 챙겨줄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남편과 나는 고군분투했다. 남편을 집에서 일하게 해 준 코로나 사태에 감사했다. 남편이 바쁠 때면 매일 찰스강변으로, 와이드너 도서관으로, 마운트오번 묘지로 아이를 메고 업고 끌고 산책을 나갔다. 아무도 수유를 외설적으로 보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풀밭에서, 벤치에서, 카페에서 쿨하게 젖을 먹이곤 배불러서 곯아떨어진 아이를 한참 지켜보다가 나란히 누워서 책을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6개월 쯤 처음으로 아이가 스스로 앉아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구부정한 자세로 어리숙하게 가쁜 숨을 내쉬는 아이와 강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남편 일터가 보이는 잔디밭에서, 엄지손톱만한 과자를 나눠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남편은 아기였을 때보다 두 돌이 된 지금의 아이가 비교가 안 되게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나는 다르다. 아이에게 나의 일부를 나눠 키웠던 첫 1년의 통통했던 볼과 야무진 입모양이 생각나면 아직도 눈물이 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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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에 탄 집터를 바라본다.

얼기설기 지어진 집, 세월을 견디기엔 역부족인 집.
불씨가 꺼진지 오래인 집에 이상하게도 몇 개의 기둥이 남아 있다.

뭐라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건너가지 못한다.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쓸모를 찾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렵기 때문이다.

바라보고, 바라보고, 아마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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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과 다름



도메인 사냥꾼에게 .com 도메인을 뺏겼다고 남편에게 투덜댔다. 딱 아이를 낳을 즈음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남편은 홈페이지를 또 만들 생각이야? 묻는다. 요즘 누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기답다, 말한다.

남편과 나는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요즘 유행하는 MBTI도 똑같고 퍼센트까지 거의 같다. 우리는 잘 싸우지 않는다. 12년동안 싸운 기억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왜 서로가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우리는 쉽게 헤아린다. 만난 직후부터, 그와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삶을 그리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내가 상상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다.

취향은 정반대다.

나는 아날로그를 동경하지만 그는 첨단을 동경한다.
나는 SF와 애니메이션을 즐기지만 그는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영화에 엄격하다.
나는 재즈에 희열하지만 그는 헤비메탈에 심취한다.
나는 명반을 추억하지만 그는 신반을 기대한다.
나는 멋없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는 멋을 덤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nightwish 최근 공연이라며 신이 나서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준다. 커널형 이어폰이다. 노이즈 캔슬링이 켜져 있다.

절레절레, 그냥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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