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솔직한 마음을 보이게 된다.

나는 가끔은 그 점에 기대지만
대개는 술을 마시면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첫 직장에서 내가 있던 부서는 지금 생각하면 구식이었다. 새벽 두세시까지 술자리를 하다 아무도 없는 양재천을 건너 집에 들어가는 날이 많았으니까. 그땐 그게 사회라고, 커리어우먼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너는 왜 안 취해? 빨리 더 마셔

따뜻한 줄 알았던 상사의 충혈된 눈이 기억난다.

멀쩡해보여서 열 받네?

주량이 자신의 무기였던 상사는 내 굴복을 원했다.

멀쩡한 게 아니었다. 정신을 놓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참았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술을 먹여 약점과 진심과 비밀을 알아내려고 한다. 맨 정신에는 마음을 움직일 힘도 없으면서. 그럴 용기와 언변도 없으면서. 그런 사람들을 나는 혐오한다.

다음날 아무일이 없었던 것처럼,
머리를 만지고 구두를 신고
안녕하십니까 밝게 웃으며 사무실에 들어섰던
그 날들이
한참 지난 지금에 와서야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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