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로 채운 작은 여유들





지난 3년은 인생의 어떤 순간보다도 정신없었지만 동시에 ‘작은’ 여유가 어느 때보다 많은 시기이기도 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다기보다 그 시간을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썼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아이가 잠들고 내게 주어진 몇 시간, 일을 마치고 유치원 픽업을 가기 전까지의 몇 분을 알차게 쓰지 않으면 나를 돌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절실함이었다.

어찌됐든 그 시간을 모으고 모아 정말 많은 책과 영화를 봤다. 아마 이 시기를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고 키운 것과는 별개로 내 자신에게는 책, 영화, 그리고 생존을 위해 늘어버린 요리실력이 남을 것 같다.

문득 책과 영화는 인생의 한 시기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을 한다. ‘임신 기간’ ‘육아 기간’이라는 뻔하고 배타적인 시기 구분이 아닌, 유연한 시각으로 인생의 시기를 정의할 수 있게 해 준다. 취향과 일상을 흔들어 놓는 책과 영화들은 흘러가는 인생에 균열을 만든다. 균열과 균열 사이는 시기가 된다.

그러면 지난 3년은 폴 토머스 앤더슨과 양가위의 영화, 마커스 주삭과 존 업다이크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 있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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