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위어 Andy Weir – 프로젝트 헤일메리 Project Hail Mary

– 앤디 위어의 소설은 황당할정도로 낙관적이며 끈기있고 용감한 과학자를 내세운다. 그래서 위어의 소설을 읽을 때 나는 마블 영화를 볼 때처럼 행복해진다.

– 내가 읽는 책의 95퍼센트는 우울하거나 어두운 책이다. 주인공은 보통 삶에 대한 씁쓸한 태도를 취한다. 인격이나 성숙함에 결함이 있지만 삶과 세상에 대해 과할 정도로 관조적이고 비관적이며 인간 군상에 대한 조소를 숨기면서 살아간다.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의 캐릭터들이 그렇다.

– 슬퍼지기 위해 또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유를 정확히 짚을 수 없는 사람의 감정과 고뇌와 욕망을 작가의 예민한 관찰력과 유려한 문장을 통해 설명받고 싶어서 소설을 읽는다.

– 취향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읽어본 소설에서 주인공이 낙천적인 경우는 정말 드물다. 라이트한 연애 소설이 아니고서야.

-내가 몇 페이지 내에 포기해버리는 종류의 주인공은 어리숙하거나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이다.

– 그런 의미에서 그레이스 박사는 너무나 독특하다. 정체모를 공간에서 시체가 된 동료 두명 사이에서 깨어났는데도 패닉하지 않는 낙천성을 지녔고, 자신감은 부족할지언정 자존감까지 부족하지 않으며(박사학위를 받고 중학교 교사가 되지만, 브레이킹배드의 월터 화이트처럼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도전에 아이처럼 흥분하고 끈기도 대단한 인간적인 슈퍼영웅이다.

– 외딴 항성계에서 외계인과 만나다니. 직접 접선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 별의 운명을 구하기 위한 간항성적 팀웍을 보여주다니!

– 수많은 물리 지식이 들어있다. 작가가 평소에 양자역학과 상대론 매니아였다고 하지만 여러 자문을 거쳤을 수고가 감동적이다. 그 지식을 배경지식 없는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하다. 내년에 개봉할 동명의 영화도, 위어의 차기작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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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시즌 개막을 기다리는 마음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에서 반 강제로 같이 하는 취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와중에 찾은 게 F1이다.

그래봤자 나는 시즌 동안 꼬박꼬박 경기를 챙겨보는 게 다이지만 남편은 코멘터리에, 팀 라디오에, 이적 관련 정보까지 늘 업데이트되어 있다. 덕분에 내가 따로 뉴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금주에 알아야할 경기 정보 탑5’나 ‘금주의 이변’ 등등을 브리핑해줘서 좋다. 심지어 날씨 상황까지.

나는 메르세데스의 팬은 아니지만 루이스 해밀턴을 응원한다. 해밀턴이 은퇴하면 너무 슬퍼서 F1을 보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초 흑인 드라이버로서 실력만으로 F1에 눈부신 족적을 남겼고,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세터인데다, 비건 식단으로 몸을 유지하고 환경, 여성, 흑인, 소수자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그를 보며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경심을 느낀다. 남편은 F1을 재미없게 만든 주범이라며 메르세데스-해밀턴 조합을 미워하지만 나는 원래 재미없게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걸…

또 한명의 좋아하는 독일 드라이버 세바스티안 베텔이 작년에 은퇴하면서 올 시즌을 기다리는 마음이 헛헛하지만, 또 새로운 얼굴들이 F1에 어떤 격변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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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통해 무언가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건

헛된 바람이다.

해결이 아닌 잠시동안의 해소 — 그만큼 잔인한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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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오랜만에 대학교에 들렀다. 졸업한 후에 가끔씩 드나들었지만 매번 다른 감정으로 오게 되는 이곳이다.

이곳엔 행복과 슬픔이 공존한다.

배움의 희열과 좋은 친구, 선생님, 뜨거운 사랑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졸업하기 전 내 모습이 떳떳하지 못해서 학교에 오면 슬프다.

학교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오만과 길을 잃은 조급함때문에 쫓기듯 졸업했던 대학교 4학년. 그 때 나는 고작 스물둘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파스쿠치로 올라간다. 박사과정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10년의 간극을 무슨 말로 메울까 싶어 주문한 커피를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 돌아선다.

아주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아닐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익숙한 창문과 익숙한 옥상과 익숙한 계단과 익숙한 의자가 보인다. 잠시 앉아본다.

이렇게나 자연스럽지 못하다. 후련하게 학교에 들러 싱그러운 시절만을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영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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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내가 주방에서 혼자 일하고 있을 때면

남편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 표정에는 나만 아는 많은 감정이 들어있다

나는 괜히 메롱, 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본다

그 표정도 너만이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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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쓰다


마음을 쓴다는 말이 좋다.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쓴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그런 누군가는 인생에서 자주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면 고통이 함께 찾아온다. 말그대로 내 마음을 함께 쓰기 때문이다.

좋아함은 거두면 된다. 다른 좋아하는 것으로 바꾸어도 된다. 하지만 한 번 쓴 마음은 거둘 수 없다. 쓴 마음만큼 내 자신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내가 마음을 쓰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존재해줘서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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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지도 지치지도 않았으면


관심있는 내용에 대해 말할 때 그의 모습은 천상 아이같다

사진에 대해 물리에 대해 F1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꼭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 같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과 흥분한 손 동작에 어린 아이같은 순수함이 보인다.
얘기가 길어지면 나는 어느새 그의 눈동자를 보고있다.

이 모습을 영원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이, 주변 환경이 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삶의 과제들과 아빠라는 과업이 그를 지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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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이번엔 얼마나 걸릴까

가늠이나 해 봤으면 한다

그동안은

슬픈 노래에 마음을 떠맡기고

차가운 이성에 소원을 빌고

꼿꼿하게 견뎌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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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들러를 다루는 법


아이가 목욕을 하기 싫다고 떼쓰는 날

“목욕물에 풍덩 들어갈래, 아니면 엄마가 ICE처럼 빠르게 씻겨줄까?”

물으면 활짝 웃으며 ICE처럼 빠르게 씻고 싶다고 한다.

아이가 밥을 먹기 싫어하면 “여기 앰트랙 식당칸 같다~ 기차소리 들리는 것 같지 않아? 쿠궁쿠궁”

소리에 신나서 밥을 먹는다.

너에게 기차란 뭐냐…

*

아이는 수 개념을 잘 모른다.

열차가 일분 있다가 출발합니다!
열차가 30분 지연됐어요! 라는 말은 할 줄 알면서

케이크 위에 촛불이 2개인지 세개인지는 셀 줄 모른다.

귀여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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