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불에 탄 집터를 바라본다.

얼기설기 지어진 집, 세월을 견디기엔 역부족인 집.
불씨가 꺼진지 오래인 집에 이상하게도 몇 개의 기둥이 남아 있다.

뭐라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건너가지 못한다.

의미를 찾기 때문이다.
쓸모를 찾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두렵기 때문이다.

바라보고, 바라보고, 아마 바라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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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음과 다름



도메인 사냥꾼에게 .com 도메인을 뺏겼다고 남편에게 투덜댔다. 딱 아이를 낳을 즈음이라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남편은 홈페이지를 또 만들 생각이야? 묻는다. 요즘 누가,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기답다, 말한다.

남편과 나는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다.

요즘 유행하는 MBTI도 똑같고 퍼센트까지 거의 같다. 우리는 잘 싸우지 않는다. 12년동안 싸운 기억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왜 서로가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우리는 쉽게 헤아린다. 만난 직후부터, 그와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삶을 그리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내가 상상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다.

취향은 정반대다.

나는 아날로그를 동경하지만 그는 첨단을 동경한다.
나는 SF와 애니메이션을 즐기지만 그는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영화에 엄격하다.
나는 재즈에 희열하지만 그는 헤비메탈에 심취한다.
나는 명반을 추억하지만 그는 신반을 기대한다.
나는 멋없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는 멋을 덤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nightwish 최근 공연이라며 신이 나서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준다. 커널형 이어폰이다. 노이즈 캔슬링이 켜져 있다.

절레절레, 그냥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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